[11] 원전 안전성

핵공학개론1 2021. 8. 22. 22:13

0. 서론

  원자력 발전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이자 위험성은 사고 시 유출되는 방사능 물질로부터 온다. 이전 글(https://seraphy.tistory.com/23)에서 다룬 핵분열생성물과 초우라늄 원소 등이 인근 지역 주민의 생활권으로 유입될 경우, 정도에 따라 다르나 해당 지역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인간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부터 야기되는 인적 피해와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여타 발전에 비해 원전의 위험성이 더 부각되는 이유는 사고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도 있지만 원전 자체가 고온, 고압의 환경을 내부에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다루는 작업이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의 글(https://seraphy.tistory.com/19)에서 논의한 바에 따르면 냉각수의 압력은 대기압의 수십 ~ 수백 배에 이르고 그 온도는 300℃ 정도이다. 핵연료봉의 중심 온도는 이보다 더 높아 1000℃를 웃돈다. 이러한 시스템을 문제 없이 작동시키는 일은 공학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다. 

  이밖에도 원전은 여태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시스템 가운데 복잡도가 가장 높은 시스템 중 하나라는 점 역시 원전 관리를 어렵게 하는 데 한몫을 한다. 시스템이 커지고 복합적으로 연결될수록 어느 한 지점에서 발생한 오류가 전체 시스템을 망가트릴 확률이 올라가며, 담당 인원의 사소한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원전 설계는 이 모든 난점에 대처할 방안을 충분히 마련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해지고, 완공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예상되는 사고 시나리오에 대한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본 글은 '핵공학개론1' 태그의 마지막 글로써, 원전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원전 설계상의 여러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하에서는 원전이 동작할 때 어느 부분에서 취약점이 발견될 수 있는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는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서술할 것이다. 또한 원전 방호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수립된 기본 개념을 알아보고, 이것이 개별 시나리오에 적용된 사례를 들어 설명하려 한다. 

 

 

1. 원전 안전 개념

  원전 사고를 예방하고 이에 대처하는 연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원전 사고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우선은 원전 사고와 다른 재해 간의 공통점을 찾아 기초적인 대응책을 수립하고, 그 다음에 원자력 사고만이 갖고 있는 특성을 고려하여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예컨대 방사능 누출과 화학물질 유출 사고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오염원이 눈에 보이지 않고, 사고 발생 시 주변 지역에 광범위한,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며 이로 인해 사후처리에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사고는 정확한 경보체계의 수립을 요하며 관련 종사자 및 인근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피훈련 실시나 비상 상황 시의 행동 매뉴얼 작성 등을 통해 대비할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원자로는 다른 발전 기관과 구별되는 특성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첫째로 장기간의 운전을 통해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핵연료 내부에 축적된다는 점, 둘째로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아 적절한 냉각이 강조된다는 점, 셋째로 원자로가 정지되더라도 그 안에서는 여전히 방사성 붕괴가 진행되어 붕괴열과 방사능에 대한 사후처리가 이어져야 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고유한 특징 또한 원자력 안전 연구에 있어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아래에 소개할 원전 방호의 몇 가지 개념에는 타 재해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과 원전 사고 대응에만 등장하는 것이 섞여 있다. 이를 통해 원전 안전 연구가 어떤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대처하는 자세로 어떤 것을 채택하고 있는지 등의 기본적인 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 심층방어와 다중방호

  심층방어(defense in depth)란 어떤 사고 상황을 단계별로 나누고, 각 단계에 대응하는 방어 체계를 모두 갖추는 것을 말한다. 원전의 경우 사고 예방, 사고 확대 방지, 그리고 방사성 물질의 누출 저지의 세 단계로 나누어 심층방어 체계가 수립되어 있다. 심층방어는 모든 설계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보며, 예기치 못한 기기 고장 가능성도 상정함과 동시에 인간의 실수까지 모두 전제함으로써 사고로 인한 인근 지역 주민의 사상률을 특정 값 이하로 떨어트리는 것이 목적이다. 일반적으로 그 확률은 여타 재해에 의한 인간의 평균 사망 확률인 0.1%로 설정한다(1/1000의 원칙). 요컨대 심층방어를 통해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률을 0.1% 이하로 만드는 것이 설계의 핵심이다. 

  다중방호(multiple levels of protection)는 심층방어 개념 중 방사성 물질의 누출 방지와 연관된 것으로, 사고 발생 시 유해 물질이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겹의 방벽을 설계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국내 원전 기준 이러한 방벽은 5단계로 구축되어 있다. 제1방벽은 우라늄 연료소결체(pellet) 그 자체로, 핵분열 결과 생성된 부산물을 UO2 내부에 가두는 목적을 갖는다. 제2방벽은 지르코늄 또는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핵연료피복관(cladding)으로, pellet을 뚫고 나온 핵분열 부산물과 fission gas를 막는 역할을 한다. 제3방벽은 원자로가 위치한 용기(vessel)에 해당하여 cladding을 돌파한 방사성 물질을 막을 수 있도록 두꺼운 강철로 구성되어 있다. 제4방벽은 원전 내벽에 위치한 철판이며, 제5방벽은 철근콘크리트로 건설된 원전 건물 외벽이다. 

 

ii. 원전 안전 계통

  심층방어 개념은 원전 내 다양한 안전 설비를 통해 구체화된다. 이들은 사고예방설비와 사고완화설비로 나뉘고, 전자는 원자로 보호 계통, 원자로 정지 계통, 비상 노심 냉각 계통으로 다시 구분되며 후자는 원자로 격납건물 및 살수계통, 공기 재순환 계통, 비상 가스 처리 계통으로 갈라진다. 

  원자로 보호 계통은 이상 상황을 감지하고 경고 발생 및 중대한 경우 원자로를 정지시키는 설비를 말한다. 다만 잘못된 정보에 의해 지나치게 빈번히 원자로가 정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수의 감시 체계가 모두 사고 발생을 알려올 경우에만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 원자로 정지 계통은 제어봉과 B-10(붕산)의 두 가지 방법으로 원자로 작동을 중단시키는 장치로, 대개의 경우 제어봉이 주요 설비이며 B-10의 투입은 사후처리가 까다로워 보조적으로 쓰인다. 비상 노심 냉각 계통은 원자로가 작동을 멈춰도 핵연료 내부의 FP(핵분열생성물)가 방출하는 붕괴열을 처리하는 장비이다. 

  격납건물은 원전 안팎에서 오는 물리적 위험으로부터 원자로를 보호하고 방사성 물질의 유출을 막는 용도로 설계되었다. 살수계통은 격납용기 내부의 열을 제거하고 압력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공기 재순환 계통은 격납건물 내 공기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이 필터를 거치도록 하여 제거될 수 있도록 만든다. 비상 가스 처리 계통은 배기 계통과 연결되어 방사성 물질이 제거된 기체를 건물 바깥으로 내보내는 목적을 갖는다. 

 

iii. 안전 설비의 작동 보장 개념

  공학적 안전 설비는 언제나 오작동의 위험이 있다. 이러한 오류를 방지하고 안전 시스템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개념들이 고안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다중성(Redundancy), 다양성(Diversity), 독립성(Independence)이다. 다중성은 같은 기능을 가진 설비를 여러 개 설치함으로써, 하나의 설비가 망가지더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다양성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여러 개 설치하여 그 중 하나가 실현 불가능해지는 상태가 되어도 의도한 기능이 수행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독립성은 몇 개의 계통이 하나의 원인 또는 결함에 의해 한꺼번에 작동 정지되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서로 분리시켜 설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원전 사고

i. INES(International Nuclear and Radiological Event Scale)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자력 사고의 규모를 대중이 알기 쉽게 정리하기 위해 1992년 INES 분류 체계가 수립되었다. INES 분류 체계는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건(Event)을 1등급에서 7등급으로 나누고 있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위험성이 높은 사건이 되며 분류 기준으로는 안전 설비에 가해진 영향과 방사선 유출 여부 등을 사용한다. 1992년 이전에 발생한 TMI(Three Mile Island, 1979년) 사고와 체르노빌(1986년) 사고는 INES 기준에 맞춰 재평가되었다. 

  1등급에서 3등급까지를 고장(Incident), 4등급에서 7등급까지를 사고(Accident)라 부르며 이를 가르는 기준은 방사선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는지의 여부이다. 이보다 경미한 사건(Deviation)은 0등급(below scale)으로 분류한다. 

 

ii. 원전 사고 시나리오

  원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고들은 유형에 따라 나누어져 있고, 이러한 분류는 원전 설계를 위한 안전해석에 유용하게 쓰인다. 

a) 과도냉각: 지나치게 많은 열이 빠져나가면 negative MTC의 영향으로 flux가 급증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증기관이 파손되어 고압의 증기가 대량으로 유출되는 경우 일어난다. 

b) 냉각부족: 열이 원자로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발생한다. 압력이 증가하여 원자로에 이상을 야기한다. 급수관이 파손되는 등의 원인으로 발생한다. 

c) 냉각재 흐름 감소: 냉각수 펌프가 약해질 때 발생한다. 

d) 반응도 이상: 예상치 못한 제어봉 이탈 등으로 인해 반응도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e) 냉각수 증가: 냉각수의 유량이 증가하여 압력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f) 냉각수 감소(LOCA, Loss Of Coolant Accident): 냉각수가 감소해 핵연료가 공기에 노출될 수 있다. 

g) 방사능 누출: 방사성 물질이 원전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를 말한다.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면 원자로 정지 계통이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비상 정지를 SCRAM(Safety Control Rod Axe Man)이라 부르는데, 이는 초기 원전에서 사고를 대비하여 공중에 매달아둔 제어봉을 도끼를 든 인력이 밧줄을 잘라 투입시키는 방식으로부터 명명된 것이다. 

 

 

3. 사고 예방과 사고 시의 대처

i. 내진설계 및 지진 대비

  원자력 발전소 건설 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부지의 선정이다. 우리나라의 원전 관련 법령 및 규제는 미국의 것을 많이 따르고 있는데, 지반 조사의 경우도 그러하다. 내진설계에 있어 대비할 지진의 강도는 일반적으로 규모로 표현되기도 하고, 그만큼 강한 지진이 발생하는 빈도로 따지기도 한다. 국내 원전은 5000년 ~ 1만 년에 한 번 꼴로 발생할 수 있는 지진에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이는 일반 건축물이 100년 ~ 500년에 한 번 쯤 발생하는 지진에 맞춰 설계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것이다. 

  국내 원전을 지을 때는 부지로부터 반경 320km 이내의 지반 조사를 거쳐 최대 가능 지진을 설정하며, 여기에 안전 여유도를 더한 값을 기준으로 내진설계를 진행한다. 비교적 최근의 원전인 신고리 3, 4호기와 신한울 1, 2호기의 경우 리히터 규모 7.0의 지진(최대지반가속도 0.3g)에 버틸 수 있도록 지어졌으며, 그 이전에 만들어진 원전은 규모 6.5(0.2g)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설계 시 기준이 된 내진설계값의 절반 수준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원자로는 비상 정지에 들어간다. 이후 현장 검사 및 안전성 평가를 거치며 이상이 없다면 재가동, 있다면 보수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ii. 방사능 누출 시 대처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해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즉각적으로 인근 지역에 비상 사태가 선언되며 관계 기관에도 소식이 전달된다. 현장에서는 다음 비상 등급 체계에 따라 가능한 긴급 조치가 시행된다. 

a) 백색비상: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인한 피해가 원전 건물 내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으로, 방사성 물질의 밀봉이 풀리거나 원전 시설 유지를 위한 전원 공급 기능이 손상되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이다. 

b) 청색비상: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인한 피해가 원전 부지 내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으로, 백색비상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 원전 주요 시설에 피해가 발생하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이다. 

c) 적색비상: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인한 피해가 원전 부지 바깥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으로, 노심이 손상되어 원전 시설의 방벽이 모두 돌파되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이다. 

  또한 재난 상황 발생 시 주민 보호 조치도 동시에 시행이 되는데, 원전 주변 지역의 유효선량 수치에 따라 옥내 대피부터 영구 이주까지의 대책이 매뉴얼로 만들어져 있다. 

갑상선방호약품배포의 경우 갑상선 피폭 흡수선량을 기준으로 한다. 

  이러한 보호 조치가 진행되고 나면 방사능 오염 제거 및 복구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iii. 후쿠시마 사고 이후 후속 조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쓰나미에 의해 디젤발전기가 침수, 전원이 끊겨 발생한 사고로 체르노빌 사고와 더불어 INES 기준 7등급에 해당한다. 이로 인한 피해를 목격한 각국 정부는 이후 원전 안전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대응은 크게 지진, 쓰나미, 정전에 의한 냉각 기능 상실에 대한 대처와 중대사고 완화 조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예컨대 지진 감지 설비 및 내진 성능을 개선하고, 쓰나미에 대비하여 해안방벽을 높이고 방수문과 배수펌프를 추가로 설치하였다. 비상발전기 확보와 열제거설비 보강도 이루어졌으며, 수소 가스 폭발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피동형 수소제거설비를 도입하고 격납건물 내 배기, 감압 시스템을 추가로 설치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1. Han gyu Joo, "Fundamentals of Nuclear Reactor Safety and Radiation(Introduction to Nuclear Engineering 1)", Seoul National University (2020)

2.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기획, 양재영, 이영희, 허균영, 이상훈, 백원필, 김연민, 노동석, 김해창, 김진우, 윤순진 저, "원자력 논쟁 : 원자력 전문가가 직접 알려준 찬반의 논거", 초판 1쇄, 한울아카데미 (2017)

3. 원자력상식사전 편찬위원회, "원자력 상식사전", 박문각출판 (2016)

4. 이은철, 조건우, 김응수, "핵공학개론", 한티미디어 (2018)

 

이미지

1. https://www.kaeri.re.kr/board?menuId=MENU00460

2. https://opis.kins.re.kr/opis?act=KROCA1100R

3. 방사능 방재 대책법 시행규칙 제15조(긴급 주민보호조치의 결정기준 등), 별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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